스포츠 / / 2023. 1. 2. 16:10

[Sergio Ramos] 골 넣는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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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빼놓고 역대 최고의 수비수를 논할 수 없다]

이탈리아의 '파울로 말디니'와 '알레산드로 네스타', 스페인의 '카를레스 푸욜', 브라질의 '카푸' 등 이와 같은 선수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역대 최고의 수비수들 중 한 명이라 불릴만한 선수였다는 것이다. '스페인' 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의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수비수로서 전성기를 보냈던 선수이자 현대 축구에서 센터백의 모든 것을 갖춘 월드클래스, '3차례 연속 국가 메이저 대회 우승'과 '4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2011년부터 9년 연속하여 '월드베스트 11'에 본인의 이름을 올린 '21세기 커리어 끝판왕'의 현역 수비수, 오늘의 주인공은 '세르히오 라모스'이다.

 

 

[로맨티시스트 수비수, 스페인 축구계를 사로잡다]

세르히오 라모스는 1986년 3월 30일, 투우로 유명한 스페인 남부 지역의 '안달루시아'에서 태어났다. 스페인 리그 '프리메라리가'에 속한 '세비야 FC', '레알 베티스' 등 유수한 클럽들이 모인 고향 안달루시아에서는 축구를 접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이에 라모스는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이후, 자신이 살던 지역 소속팀인 세비야 FC의 유스(Youth) 팀 입단 테스트를 거쳐 팀에 입성하게 된다. 당시 10살이었던 라모스의 유스팀 동료는 스페인 대표 윙어 '헤수스 나바스'와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등 많은 재능 있는 꿈나무들이 있었고, 곧 라모스의 절친이 될 '안토니오 푸에르타'도 있었다. 라모스는 유스팀에서 훈련을 하면서 유스팀 주장이었던 푸에르타와 급속도로 친해지며 절친이 되었고, 이 두 명의 선수는 각자 오른쪽과 왼쪽 수비 포지션을 맡으며 탄탄한 수비진을 구축했다. 추후 탄탄한 수비진을 구축한 듀오는 10대의 나이로 2003/04 시즌 리그 경기에서 나란히 양쪽 풀백으로 데뷔하며, 어린 나이임에도 팀의 중요한 경기를 6번이나 출전하기도 했다.

 

17살의 나이에 데뷔시킨 당시 세비야 FC의 감독 '호아킨 카파로스'는 라모스를 주전으로 출전시킨 데 이어 90분 풀타임을 소화하게 했는데, 이는 라모스가 '라이트 백'(오른쪽 측면 수비수)으로서의 '수비력'과 볼에 대한 '집중력', 그리고 다이나믹한 '오버래핑'(공격 가담력)까지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라모스의 능력을 비단 세비야 FC의 감독뿐만 아니라 거함 '레알 마드리드'도 알고 있었다. 이에 2000년대 초반 이후,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 우승 타이틀이 없었던 레알 마드리드는 스타성과 잠재력을 지닌 라모스에게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라모스 본인과 클럽 간의 요구 조건이 달라 양 측이 팽팽하게 맞서며 결국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이후 라모스는 스페인의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치며 '무적함대의 미래'로 각광받았고, 2004년 'U-19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이 대회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나서 물 샐 틈 없는 수비로 스페인 대표팀이 우승을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며 스타덤에 올랐다. 라모스는 어린 시절부터 아르헨티나 최고의 스피드 윙어 '클라우디오 카니자'를 동경하여 '긴 머리에 밴드를 착용'하는 것을 즐겨했다.

 

2004/05 시즌, 당시 세비야 FC의 수비진을 책임졌던 '하비 나비로'와 '아이토르 오시오', 이 두 명의 센터백 조합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면서 라모스는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되었고, 이후 31경기에 출전하며 꾸준하게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었다. 이전 라모스가 뛰었던 오른쪽 풀백 자리에는 브라질 역대 최고의 오른쪽 풀백 중 한 명인 '다니엘 알베스'가 대신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던 라모스를 영입하기로 전격 결정했고, 그의 절친이었던 푸에르타도 영입 대상이었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는 2005년 여름, 19살의 라모스에게 370억이라는 당시 꽤나 많은 이적료를 세비야 FC에 지불하면서 영입했지만, 푸에르타는 레알 마드리드의 제안에 고민하던 끝에 소속팀 세비야 FC에 남기로 했다. 라모스는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의 레전드 센터백이었던 '페르난도 이에로'의 은퇴 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 수비라인을 보강하는 데 가장 필요했던 인재였다.

 

한편, 세비야 FC에 남았던 라모스의 절친 푸에르타는 약 2년 뒤인 2007년 8월 28일, '헤타페 CF'와의 라리가 개막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때 푸에르타의 아내가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이 그의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이에 라모스는 푸에르타의 장례식에 참석해 계속해서 오열하는 등 슬픔에 잠겼고, 자신의 절친을 영원히 가슴속에 기억할 것이라 다짐했다. 이후 라모스는 스페인 국가대표 경기에서 '등번호 15번'을 달고 뛰는데, 이는 푸에르타가 국가대표로 단 1경기를 뛰었을 당시에 사용했던 등번호로 푸에르타를 항상 생각하고 기린다는 마음으로 15번을 달고 뛰었던 것이다. 추후 이 번호는 라모스의 스페인 국가대표팀 고정 등번호가 되었다. 다시 라모스의 클럽 이적 이야기로 돌아가, 10대 선수치고는 꽤나 높은 가격이었지만 '위치 선정'과 '공중볼 처리', '안정감 있는 태클', 그리고 '비어있는 공간 커버 능력'은 어린 나이였음에도 수준급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페레스 회장이 그를 적극적으로 영입했다. 계약기간은 무려 8년이었고 이에로의 등번호였던 4번까지 물려받게 되었다.

 

 

[라모스가 이끄는 무적함대 스페인, 세계를 접수하다]

레알 마드리드로 입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첫 골을 신고했는데, 이때부터 라모스는 브라질과 레알 마드리드의 역대 최고 레프트 풀백 중 한 명이었던 '호베르투 카를로스'에 이어 '골 넣는 수비수'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2007/08 시즌, 절친 푸에르타의 사망 사건으로 한때 슬픔에 빠지기도 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은 뒤 엄청난 활약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동 포지션의 경쟁자였던 '미첼 살가도'를 밀어내고 라이트 풀백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라모스는 21살의 젊은 나이임에도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당시 새로운 영입생이었던 포르투갈의 대표 센터백 '페페'와 찰떡궁합을 보여주면서 리그 우승에 많은 기여를 했다. 2009년까지 오른쪽 측면을 담당했던 라모스는 최전방 공격수였던 '라울 곤잘레스'나 '뤼트 판 니스텔루이' 등과 호흡을 맞추면서 세 시즌동안 1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다. 그만큼 공격하는 것을 즐겨했던 라모스였기 때문에 센터백에 비해 라이트 풀백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이듬해 리그 내 최대 라이벌인 FC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가 역대급 활약을 펼치면서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이었던 '후안데 라모스' 감독이 경질되었고 팀이 많이 흔들리는 등 위기에 빠져있었다. 2008/09 시즌, 리그 준우승에 그치자 페레즈 회장은 당대 최정상급 스타들을 영입하여 팀의 가치와 명성을 높이고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는 '갈락티코 정책'의 부활을 내세우며, '히카르도 카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림 벤제마', '사비 알론소'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차례로 영입하여 '갈락티코 2기'를 구성했다. 감독 또한 명장 '마누엘 페예그리니'를 영입하며 다음 시즌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했는가. 엄청난 돈을 부었지만 또다시 FC 바르셀로나에 밀려 다시 리그 준우승을 했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6강 탈락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만족하지 못한 팀의 성적에 비해 라모스는 절정의 폼을 보여주었고, 이는 결국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까지 스페인 국가대표 주전으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의 '카를레스 푸욜', '헤라르드 피케'와 함께 최강 수비진을 구축하며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는 스페인 대표팀이 '유로 2008 대회' 우승 이후 연속해서 들어 올린 '메이저 대회' 우승 트로피였고, '무적함대' 스페인이 축구계를 접수하는 순간이었다. 월드컵이 마무리되고 시작된 2010/11 시즌,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스타가 된 독일의 '메수트 외질'과 아르헨티나의 '앙헬 디마리아'의 합류로 레알 마드리드는 전 시즌부터 착수한 갈락티코 2기 재건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여기에 이탈리아의 명문 구단인 '인터 밀란'에서 트레블을 이뤄낸 '조세 무리뉴'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로 오게 되면서 갈락티코 정책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스페인 리그컵인 '국왕컵'에서 벌어진 '엘 클라시코'(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와의 더비전) 더비에서 승리하며 18년 만에 이 대회 정상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경기 직후 있었던 우승 퍼레이드 행사에서 손이 미끄러진 라모스가 버스 위에서 우승 트로피를 떨어뜨리면서 트로피가 버스 앞바퀴에 깔려 박살이 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당시 주장이었던 라모스의 실수라 이보다 더욱 망신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 시즌, 국왕컵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챔피언스리그와 리그에서는 FC 바르셀로나에 밀려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2011/12 시즌에는 만족할만한 성적을 내고자 프랑스 출신 센터백 '라파엘 바란'과 포르투갈의 신성 레프트백 '파비우 코엔트랑'을 영입하며 수비라인을 더욱 두텁게 했다. 당시 FC 바르셀로나와 시즌 막판까지 치열하게 우승 경쟁을 벌였고, 라리가 우승을 놓고 격돌했던 경기에서 승리를 챙기며 리그 우승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되었다. 그러나 치열했던 경기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는지 곧바로 치러야 했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고, 여기에서 라모스를 비롯하여 호날두, 카카까지 모두 실축하며 결승 티켓은 바이에른 뮌헨에게 아쉽게 넘겨주어야 했다. 챔피언스리그는 아쉽게 4강에서 마무리되었지만, 리그에서는 라리가 최초 승점 100점을 기록하며 4년 만에 우승 타이틀을 찾아오게 되었다.

 

'유로 2012 대회'가 시작되고 스페인 대표팀이 메이저 대회 3연패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수많은 축구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2승 1무로 조별리그를 가볍게 통과한 스페인은 8강에서 프랑스를 2:0으로 제압하고 준결승에서 팀 동료인 호날두의 포르투갈을 만나게 되었다. 4강전은 정규시간 동안 끝끝내 0:0으로 무승부를 기록하여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고, 라모스는 승부차기에서 정면으로 살짝 띄우듯이 차는 방식인 '파넨카킥'을 성공시키며 엄청난 강심장임을 보여주었다. 라모스는 자신의 실축으로 전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전 바이에른 뮌헨과의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던 아픔을 이 경기를 통해 말끔하게 씻어버렸고 승부차기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라모스의 어머니는 라모스의 페널티킥이 심장을 너무 뛰게 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포르투갈을 4:2로 제압하며 결승 무대에 진출한 스페인은 조별리그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했던 이탈리아를 다시 한번 만나 4:0의 큰 점수 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에 스페인은 전무후무한 '메이저 대회 3연패' 기록을 세우며 축구 역사상 최강팀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챔피언스리그 우승,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2012/13 시즌, 라모스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긴 머리'를 잘라 짧은 머리를 유지하고 수염까지 기르면서 스타일 변신에 성공했다. 반면, 이전부터 터프한 경기 스타일로 경고와 퇴장을 수없이 받아왔던 라모스가 해당 시즌에도 변함없이 꾸준하게 받게 되면서 경기 스타일 변신은 안타깝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도 신경이 쓰였는지 시즌 중후반부터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심판에게 항의와 욕설을 하는 등 라리가 4경기 및 국왕컵 1경기 출장정지의 징계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수문장 '이케르 카시야스'와 동료 센터백 '페페'의 부상까지 겹치게 되어 레알 마드리드는 강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그리고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를 주전급 선수들 없이 치러야 하는 악재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죽음의 일정에서 라모스는 맨유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자책골을 넣어 팀이 탈락할 위기에 처하지만, 교체로 들어온 '루카 모드리치'와 골잡이 호날두의 연속골로 겨우 위기를 넘겨 8강행을 확정 지었다.

 

라모스는 터키 구단인 '갈라타사라이'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더 이상 카드를 받지 않겠다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또다시 경고 누적으로 8강 2차전에 결장하게 되었다. 불안한 수비력을 극복하여 팀이 가까스로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4강 상대인 독일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1차전 4골을 내주며 1:4의 스코어로 참패를 당한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의 홈에서 치러진 4강 2차전에서 라모스는 절치부심으로 경기에 임하여 골을 넣는 등 분투하여 2:0으로 승리를 거뒀지만, 합계 스코어에서 3:4로 밀려 직전 시즌에 이어 또다시 결승 티켓을 상대에게 내어줘야 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국왕컵에서는 반드시 승리해서 우승컵을 들어 올려야 한다고 했지만, 이 역시 같은 마드리드 지역 라이벌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역전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치는 등 해당 시즌 무관의 설움을 느끼게 되었다. 무리뉴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도 최악의 시즌이라고 평했고, 얼마 뒤 레알 마드리드와 계약 해지를 하며 팀을 떠나게 되었다.

 

2013/14 시즌을 앞두고 이탈리아의 명장 '카를로 안첼로티'가 부임하면서 라모스를 뜬금없이 센터백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시킨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경기인 FC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 더비에서 말이다. 당연하게도 자신이 평소에 뛰었던 포지션이 아니었기 때문에 좋지 못한 플레이가 나왔고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이 시기 레버쿠젠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라이트백 '다니엘 카르바할'이 레알 마드리드로 복귀했고 라모스와도 좋은 호흡을 보이며 수비 안정화에 큰 힘이 되었다. 해당 시즌, 챔피언스리그는 라모스의 무대라고 할 정도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는데,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만난 바이에른 뮌헨과의 2차전에서 라모스는 헤더로만 무려 2골을 넣으며 골 넣는 수비수라는 명성을 보여주었고, 호날두의 2골을 더해 4:0의 스코어로 팀을 12년 만에 결승 무대로 이끌게 되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0:1로 끌려가던 후반 추가시간에 극적인 헤더로 동점골을 집어넣으며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결국 연장으로 간 이 경기는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3골을 추가로 실점하게 되면서 4:1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리그는 3위로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10번째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12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강자 타이틀을 다시 가져오게 되었다. 또한, 국왕컵에서는 엘 클라시코가 성사되었는데 챔피언스리그에서 중요한 활약을 했던 웨일스 출신의 '가레스 베일'이 특유의 폭발적인 스피드로 수비수를 제친 후 골을 넣은 것이 그대로 결승골이 되며 2:1로 이 대회 우승컵을 따내며 레알 마드리드는 2관왕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해당 시즌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은 탓일까. 다음 시즌인 2014/15 시즌, 전반기까지는 어마어마한 페이스를 보이다가 시즌 후반기에 팀이 갑자기 무너지며 리그 준우승, 챔피언스리그 4강 탈락 등 2012/13 시즌 때와 동일하게 무관으로 시즌을 마쳤다. 문제는 시즌이 끝난 후였는데 다른 팀 동료들에 비해 낮은 주급을 받고 있던 라모스가 팀에 불만을 표출했다. 거기에 2015/16 시즌, 수비진 보강이 필요했던 맨유와 연결되며 라모스 이적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실제로 맨유로 가는 듯한 액션을 취하기도 했지만, 이내 레알 마드리드와 2020년까지 재계약하며 일단락되었다. 이때 '맨유는 이용해먹기 딱이야'(줄여서 '맨이딱')라는 맨유에게는 굴욕적인 말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는 정작 자신은 이적할 생각조차 없었지만 타 구단 이적설을 통해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 이룬 3연패, 소속팀에서도 이루다]

2015/16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주장이자 레전드였던 카시야스가 떠나고 새로운 주장으로 임명된 라모스와 새로 부임한 '라파엘 베니테즈' 조합은 리그 초반 '최소 실점 1위' 팀이라는 좋은 기록을 가지고 순항했다. 그러나 라모스의 부상 이후 갖게 된 경기에서 두 골이나 실점하는 바람에 개막전부터 이어져 온 무패행진은 마감되었고, FC 바르셀로나에게 0:4 대패, 리그 중반에 치렀던 이강인의 전 소속팀 '발렌시아 CF'와는 2:2로 무승부를 거두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수뇌부는 베니테즈를 경질하기로 전격 발표했다. 시즌 전반기만에 감독이 경질되는 바람에 분위기가 어수선했던 레알 마드리드는 비장의 카드라 볼 수 있었던 '지네딘 지단'에게 시즌 후반기를 맡기게 된다. 리그 우승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여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만, 해당 시즌 리그 우승팀인 FC 바르셀로나와 시즌 막판까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1점 차 아쉬운 준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챔피언스리그에서는 2년 만에 또다시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는 등 명장 지단의 능력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시즌이었다. 결승전 상대는 2년 전 맞붙었던 지역 라이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는데, 라모스는 세트피스를 통해 선제골을 넣으며 팀의 기세를 올렸고, 결국 승부차기 끝에 5:3으로 승리하면서 라모스는 주장 첫해 '빅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컵 별칭)를 들어 올리며 경기 최우수선수에도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2016/17 시즌, 리그 시작 전에 열린 전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과 '유로파리그 우승팀'이 맞붙는 'UEFA 슈퍼컵'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라모스의 전 소속팀이었던 '세비야 FC'와 경기를 갖게 되었는데, 후반 추가시간 동점을 만드는 헤더골을 집어넣으면서 유럽 대회 결승전에서 3차례나 골을 넣은 최초의 수비수가 되었고, 카르바할의 결승골로 이 대회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이에 라모스는 다시 한번 경기 최우수선수에 선정되었다. 게다가 라모스는 해당 시즌에 있었던 FC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 경기에서도 후반 추가시간에 헤더골을 작렬했고, 1주일 뒤에 열린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의 리그 경기에서마저 90분에 극장골을 터뜨리며 그야말로 '수트라이커'(수비수 + 스트라이커의 합성어)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처럼 팀이 40경기 무패행진을 기록하는데 큰 기여를 했던 라모스였지만, 이를 멈춘 것 또한 공교롭게도 라모스의 자책골이었다. 자책골은 리그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리그 8강 후반 78분경에 나왔는데, 다행히 라모스는 호날두의 골을 어시스트를 하며 소속팀을 '7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시켰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는 준결승에서 다시 한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무너뜨리며 결승에 올랐고, 라모스는 유벤투스와의 결승전, 공격형 미드필더인 '파울로 디발라'를 철벽수비로 꽁꽁 묶으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당시 유벤투스는 챔피언스리그 12경기에서 고작 3실점밖에 하지 않은 견고한 수비를 자랑하는 팀이었기에 레알 마드리드도 유벤투스의 강철 방패를 뚫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레알 마드리드가 '챔피언스리그 2연패'를 이루는데 큰 힘을 보탠 라모스는 한 시즌 리그 7골을 넣으면서 유럽 최고의 '골 넣는 수비수'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2017/18 시즌, 어떠한 팀도 이뤄내지 못했던 '챔피언스리그 3연패'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긴 후, 라모스는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위해 스페인 대표팀에 합류했다. 스페인은 월드컵 16강전에서 개최국 '러시아'에게 무릎을 꿇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에 이어 이번에도 다시 한번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라모스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을 기약하며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 아님을 다짐했다. 스페인은 러시아에게 패하여 16강에서 탈락한 뒤 3개월 후, 잉글랜드에게 또다시 패하며 '15년 만에 홈경기 패배'라는 굴욕을 안게 되었다.

 

이후 FC 바르셀로나에서 트레블을 이끌었던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스페인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모스는 팀의 주축으로 남아 스페인 재건에 힘을 더했다. 2019년 10월, 라모스는 국가대표 168번째 A매치 출전으로 스페인 대표팀 '역대 출장 1위'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그의 등에는 12년 전 세상을 떠난 절친 푸에르타의 등번호가 여전히 새겨져 있었다.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라모스는 경기 수뿐만 아니라 공격 본능 또한 여전히 놀라웠다. 2018년 9월부터 2020년 9월까지 약 2년 동안 라모스는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102경기 34골을 터뜨렸고, 2020년에는 그냥 공격수라고 봐도 될 정도로 많은 공격에 가담했다. 2020년 리그 후반기 17경기에 나서 무려 8골을 터뜨린 것이다. 라모스는 리그에서 총 11골을 넣었는데, 이는 팀 내 최다득점자 2위에 해당하는 기록으로 라모스보다 골을 많이 넣은 선수는 최전방 스트라이커 '카림 벤제마'뿐이었다. 수비수로서 반드시 필요한 '볼 낙하지점을 포착하는 능력'과 '공간 커버 능력'은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에 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고, 페널티킥 전담 키커는 팀을 떠난 호날두 대신 라모스가 맡게 되면서 골수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게다가 라리가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수비수 '로날드 쿠만'을 뛰어넘어 역대 1위에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레알 마드리드의 정신적 지주, 또 다른 여정의 시작]

30대 중반의 라모스지만 그가 없으면 챔피언스리그 승률이 20%도 되지 않았던 레알 마드리드의 2020년도 기록을 보면 여전히 그는 레알 마드리드의 핵심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신체 노쇠화와 부상으로 인해 2020/21 시즌 점차 경기 출전수가 줄어들게 되었고, 당시 계약기간이 끝나가던 라모스는 레알 마드리드와 재계약 협상을 타개하려 했지만 30세 이상의 선수에게 1년 미만의 계약 조건을 제시하는 레알 마드리드는 전통에 따라 라모스에게 '1년 + 연봉 삭감'을 제시했다. 그러나 라모스는 2년의 계약 기간을 원했고, 그렇게 협상은 결렬되어 자유계약선수(FA)로 팀을 떠나 현재의 소속팀인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계약 조건은 옵션 포함 최대 1,300만 파운드의 연봉과 2023년까지 2년간의 계약기간으로 계약이 체결되었다. 파리 생제르맹에서의 첫 시즌은 라모스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시즌이었다. 부상으로 인해 시즌 절반 가까이를 날려버릴 만큼 거의 출전을 하지 못했으며,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는 친정팀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 1, 2차전 도합 2:3으로 역전패를 당하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러나 프랑스 리그 데뷔 첫 시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챔피언스리그 탈락의 아쉬움을 그나마 달랠 수 있었다.

 

2022/23 시즌 개막 후, 리그와 팀에 적응을 마친 라모스는 산뜻하게 이번 시즌을 시작했다. 지난 시즌처럼 크게 잔부상에 시달리지 않았고, 30대 중후반의 나이임에도 몇 차례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순항하고 있다. 그러나 파리 생제르맹에 와서도 여전한 터프한 경기 스타일로 개인 통산 28번째 레드카드를 받으며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이에 라모스는 21세기 들어 가장 많이 퇴장을 당한 선수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라모스의 총 28번의 레드 카드 가운데 21번은 스페인 라리가, 4번은 챔피언스리그, 1번은 스페인 국왕컵, 마지막 2번은 프랑스 리그앙에서 받게 되었다. 사상 첫 겨울 월드컵을 앞두고 라모스는 파리 생제르맹 이적 후,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많은 나이로 인한 노쇠화 때문인지 결국 엔리케 감독의 신임을 얻지 못하며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을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마무리해야 했다.

 

라모스는 거친 플레이로 최다 퇴장 등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국가대표팀에서든 소속팀에서든 수비진을 통솔하고 피드백하며, 동료 선수들에게 임무를 배정하는 등 팀을 이끌었던 모습과 실력만큼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선수이다. 공과 주도권을 상대로부터 쉽게 가져오고 상대에게 잘 빼앗기지 않는 철인 라모스의 모습은 '21세기 최고의 수비수'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16년 간의 레알 마드리드 생활을 마치고 떠난 프랑스 무대, 제2의 전성기를 향한 그의 또 다른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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